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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5.25

[8] 늦은 12월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기다림에 관해서 말하고 싶다.

사실 우리는 기다림과 어울리지 않는 시대를 살아간다나는 너를 기다리지 않고 너는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우리는 공백 없는 시간을 살아간다그래서 오 분의 공백은 지치리만큼 버겁다.

 

누군가 그랬다시간을 아껴서 남는 게 뭐냐고어차피 남아도는 게 시간이니 아낄 필요가 없다고.누구더라아무튼 우리는 분명히 많은 식으로 시간을 아껴왔다아직 타보지 못한 케이티엑스초고속 인터넷과 컴퓨터 켤 시간도 줄여주는 스마트폰등등앞으로도 내가 아닌 기술자들은 지식인들은 시간을 지배하고자 노력을 멈추지 않겠지다만 컴퓨터 켤 시간편지 부치러 가는 시간을 아껴서 우리에게 남는 시간이 있었냐는 것이다시간이라는 개념은 애석하게도 아낀 만큼 돌아오는 물리적 개념이 아니다여유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다오히려 아낌없이 써버려야 할 일이다.여유로우려면 여유에 시간을 써야한다그러니 우리는 어디에다 쓸까를 고민해야 한다.

 

작년 겨울 고도를 기다리며를 처음 읽었다이미 제목으로도 명작인 책들이 있다이 책이 나에게 그랬다. "확실한 건 이런 상황에선 시간이 길다는 거다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우린 온갖 짓거리를 해가며 시간을 메울 수밖에 없다는 거다뭐랄까얼핏 보기에는 이치에 닿는 것 같지만 사실은 버릇이 되어버린 거동을 하면서 말이다넌 그게 이성이 잠드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짓이라고 할 지 모르지그 말은 나도 알겠다하지만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이성은 이미 한 없이 깊은 영원한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는 게 아닐까하고 말야너 내 말 알아듣겠냐?"(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은 후 내 다이어리에 쓴 내용아마도 인용인 듯하다.) 오지 않을 고도를 아마 꽤 오랜 시간 기다린 그들은 이미 시간과 장소에 대한 개념과 기억을 상기시키지 못한다고도는 누구일까내가 의문하지 않은 것은 그들도 고도를 알지 못하고 별로 알려줄 마음도 없어 보인 탓이다고도보다 기다림에 힘이 있는 이야기우리 누구든 고도를 기다리며 온갖 짓거리를 해가며 시간을 메울 것이다그러다 맞게 되는 것이 죽음이든 번영이든 우리는 그것을 기다렸던 듯이 하지만 이내 다시 지리멸렬한 일상에 그마저 기다림의 일상으로 편입시킬지 모른다.

 

기다림.

무엇을 연상시키는가나에게 기다림은 소풍약속설렘지하철역버스정류장휴대전화할 수 있다고 믿지만 이내 서운한 일상대의 작은 익스큐즈휴대전화 대신 잃게 된 것, 2013년에 만나게 될 나의 님?

 

무엇을 기다림은 무엇이 아니라 기다림 그 자체이다기다림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다시 기다릴 무언가를 만들 것이다기다림에 시간을 쓰는 것그 공백에 기꺼이 동참함은 어쩐지 설렘을 낳을 것 같다요즘 갑자기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읽으면 마음이 뭉클한 탓에 기다림이란 행위를그것이 파생하는 감정을 떠올리고 있다나는 무엇을 간절히 기다려보았을까나는 온전히 기다리기를 해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