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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5

불필요한 소비재와 문화재

불필요한 소비재와 문화재

 

한 영화관계자는 영화광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더라. 영화광들은 영화를 사랑한답시고 한 영화를 열렬히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이 영화 저 영화 닥치는 대로 본다. 한 마디로 바람을 피운다고 말한다.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 싶은 영화가 단 한 편은 아니지만 영화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한 편의 영화가 아닌 영화를 통째로 독식하고 싶어 한다. 그 뿐인가. 열심히 그 대상을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한다. 한 편의 영화에 대한 몰입을 마치자마자 혹은 다 마치지도 못한 채 새로운 항구를 향해 항해한다. 그야말로 영화는 예술이고, 오락거리이다. 열렬한 사랑? 오락거리와 사랑을 기대하지는 않아.

그러다 그 영화가 다시 보고 싶은 날이 오면, 지나간 남자친구가 문득 그리워지는 거랑 같아? 아니 다르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 편의 영화가 구남친보다는 나은 것 같기도하다.

 

그렇다면 바람둥이적 소비는 뭐라고 해야 하지. 이건 바람둥이가 아니다. 놀부적인 것이다.

 

물건을 놀부처럼 사는 사람들은 물건을 정말 사랑하는 건지 모르겠다. 명품신발을 애기라고 부르는 한 여자 연예인은 물건을 정말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친 여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파생가치에 집중하는 그 여자는 그 파생가치가 마치 자신의 분신이거나 피붙이 이듯 대한다. 그 애기가 단 한 명이 아니라 옷부터 신발, 가방에 이르기까지 몽땅의 소비재라는 점에서 더욱 존중할 수 없다.

영화와 열렬한 사랑을 하지 않듯이 그것들은 그녀의 애기가 아니다.

그녀의 사치품을 비웃으려면 나는 한 작품과 열렬히 사랑하지 못한 죄를 심문받아야 한다. 놀부나 바람둥이나 거기서 거기

 

카프카를 이해하기 전에 다른 책을 펼쳐들고

아직 글렌 한사드의 멜로디가 귀에 익기도 전에 다이애나크롤의 음악이 듣고 싶다

홍상수의 영화를 좋아하기 위해 열 편도 넘는 그의 영화를 심지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나 오수정처럼 영 더럽고 불편한 것까지 보고 앉아있다

 

그 여자가 온갖 사치품을 애기라고 부르는 짓이나

이 책 저 책 치근덕거리는 짓이나.

 

지적 허영심

그 여자가 옷과 신발과 가방을 갖춘 여자를 지대로 된 여자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머리에 뭐 좀 들어 보이는 사람을 지대로 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결국 자기 가치관에 맞게 허영을 뽐내는 일이다.

 

2012년도 1학기 벚꽃이 피던 때 나는 허영덩어리 여성이라는 고민과 자괴에 빠져있었다. 허영 가득한 여성이 주인공인 한 소설에서 그녀를 비웃는 게 가장 쉬웠지만 어쩐지 내 처지를 돌아보았던 일이 되고 말았다.

 

 

수업시간 교수님의 말을 최대한 기억해 쓴다. 허영이란 근대의 용어이다. 허영은 풀어 말하면 분수에 넘치는 영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는 근대사회에서 성립시키기 어려운 개념이기도 하다.분수라는 기준은 신분제 안에서 허용되는 것이니. 그래서 근대사회에서 허영은 욕망을 비난하는 용어로 쓰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욕망의 진상을 보여주는 용어이기도 하다. '난 그렇게 살만한 사람이다'의 반증이다. 더구나 욕망이란 자발적인 것일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욕망을 모방할 수밖에 없다. 요즘처럼 미디어의 홍수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오죽하랴. 우리는 욕망의 주체자이지만 자발적이지는 않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형태이다. 그러니 허영은 주어다 학습된 욕망을 드러내는 실태인 것이다.

 

사는 방식이 소비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보여주기 식의 나를 가꾸는 일을 포기하는 일은 인정받을만한 자아정체성을 포기하는 일이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누구나 기준이 다르고 인정받고 싶은 부분이 다를 뿐 모두 허영을 충족시키며 살아간다. 허영의 증폭을 비난하는 것은 그 사람의 기준을 비난하는 일이다. 남을 비난 하는 내 입과 네 입이야 말로 개인의 허영을 사회관계에 투입시켜 상대가 원치 않는 충고와 지적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 허영 없음을 부정하며, 진정 그 허영 없음은 관계에서만 찾아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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