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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2013. 6월의 어거스트

2013. 6월의 어거스트


편지를 정리했다. 내가 뱉어버린 말들처럼 내가 끄적인 편지도 누군가에게 잔여물이 되어 남아있을 거라니.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나이를 먹을수록 뱉어버리는 말은 줄어든다. 나는 여전히 쉬지 않고 드립을 치며 
쉬지 않고 드립을 치는 친구들을 곁에 두었지만. 드립 시 우리를 메우는 공기는 유쾌하다. 
유머란 이상과 차이의 틈을 따라 지나가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나누는 드립은 우리의 차이를 이상으로 일치시켜가는 데 일조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말들 말고는, 돌 던지듯 말을 던지는 일은 흔치 않다. 우리는 이제 말에도 무책임하지 않다. 
어쩌면 때로는 의도적으로 네게 상처를 주려는 듯이 말을 할 수도 있고. 
네가 듣고싶은 말이 무엇인 줄 알면서도 정곡만 찌르는 명사수가 되기도 한다. 
그런 말은, 무심하지만 무심코 또는 실수로 뱉은 말은 아니다. 나는 잠시 작은 치기를 표출했다.
편지를 말하려했는데, 말이 길어졌다. 아직 나는 저렇게 치사하고, 치사한 말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을 잘 알고 
또 어떤 말이 어떻게 기능하는 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100 중 50 이상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 마저도 시간이 지나며 사라지곤 한다. 
너와 대화를 나누었던 공간이나, 그 시간의 흥이나 슬픔이 잔여물이 되어있기도 한다. 
말을 던질 때의 표정이나, 우리가 공유했던 만족감이나 이런 것들이 남기는 한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있듯이 말은 역사적인 면에서 힘이 없다. 
말을 통해 쌓이는 것은 말이 아니라 관계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상대는 체하게 하고, 대화가 잘 통하는 상대는 나를 배고프게 한다. (박인해와의 대화에서)


편지는 기억한다는 점에서 당혹스럽다. 
그리고 뱉어버린 말들이 그렇듯이 뱉어버린 자는 기억할 수 없고, 받은 사람은 원한다면 언제까지든 기억할 수 있다. 
철저히 수신자 중심의 수단으로 느껴진다.  
우주에서 지구가, 지구에서 나란 존재가 너무나도 미미하듯이 
인류의 역사에서 나의 역사는 찰나에 불과하다. 
내 역사에서 너에게 전하는 그 말은 내 역사를 통과하는 감정일 수 있지만 내용자체는 찰나일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발신자는 찰나의 감정을 전달하고 
수신자는 영원의 기억을 전달받는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 텍스트의 시점을 혼돈할 리는 없겠지만. 어쨌든 찰나를 주지만 영원을 받는 다는 점이 재미있게 느껴진다. 
내가 쓴 손편지가 너의 상자에서, 봉투에서 또는 책 사이에서 잠들어있다면 
언젠가 다시 반추될 것이라는 점에서 민망하지만. 꽤 고맙다.

사실은 친구의 편지를 다시 읽었던 이야기를 하고싶었다. 
그때는 잘 몰랐던 것들, 그때는 볼 수 없었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정리가 잘 안된다. 
그래서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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